한국서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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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박물관
한국서예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상설 전시실을 갖춘 서예 전문 박물관입니다. 석문 · 법서 · 조선명필 · 서간 · 어필 · 근대명인 · 사군자 · 문방사우 · 사랑방 등의 주제를 구성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서예사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성격과 시기에 따라 중요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각 주제별 코너마다 설명 패널을 배치하여 전시 구성품에 대한 이해가 쉽도록 하였으며 서예의 감상과 이해를 돕고자 전시실 입구에 영상매체와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교육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금석문(金石文)

정희·정희련 묘갈 사진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명
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銘》,
954년 세움, 김생(金生)
글씨 집자(集字)
금석문은 철이나 청동(靑銅)같은 금속재료에 글자를 새긴 금문(金文)과 석재(石材)에 글씨를 새긴 석문(石文)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금문에는 동종(銅鐘)이 석문에는 비석(碑石)이 대표적인 유물로 알려져 있으며 흙으로 빚은 토기, 기와, 전돌 등의 명문(銘文)도 금석문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금석문은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되는데, 광개토대왕비나 진흥왕순수비 등의 삼국시대 비문은 역사 문헌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적혀 있어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획기적인 전환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탑비(塔碑), 고려시대 묘지(墓誌), 조선시대 묘비(墓碑)는 역사와 문화 연구뿐만 아니라 서예사(書藝史) 자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문헌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 분야에서 중요한 부분인 금석문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금석문 탑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정유(鄭裕)․정희린(鄭姬隣) 묘갈을 전시 공간에 배치하였습니다.

법서(法書)

장횡거 서명/ 이정영 글씨 사진
〈장횡거 서명 張橫渠西銘〉,
이정영(李正英) 이정영 글씨
법서(法書)란 후대의 법칙과 모범이 될 만한 옛 명인의 필적을 말합니다. 법서에는 진적(眞蹟), 모사본(摹寫本), 탑본(搨本)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법서를 학습하거나 감상하기 위해 돌이나 나무판에 새겨 탑본을 뜨고, 이를 배접하여 첩으로 만드는데 이것을 법첩(法帖)이라고 합니다.
법서를 그대로 따라 익히는 방법인 모서(摹書)와 임서(臨書)는 서예 학습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써 이를 반복적으로 학습해서 숙달된 뒤에야 창의적인 작품 활동이 가능합니다.
법서 중에서도 왕희지(王羲之)의 필적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서예 학습의 모범이 되었으며 후대의 서예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시된 법첩을 통해 이를 따라 익히던 당시 사람들의 학습 방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법서(法書)

구양수 풍락정기/윤순 글씨 사진
<우무릉 권주 于武陵勸酒>,
박태유(朴泰維), 보물 제1675호
조선시대에는 문신, 학자 중에 명필이 많았고 사자관(寫字官) 등의 직업서예가가 많았습니다. 조선전기에는 사대명필(四大名筆)로 알려진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석봉(石峯) 한호(韓濩), 자암(自庵) 김구(金絿),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있으며,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퇴계(退溪) 이황(李滉),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등도 주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서화에 능했던 신사임당(申師任堂)은 부덕과 교양을 갖춘 여류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양송체(兩宋體)를 창안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고전(古篆)에 능한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있으며 문인(文人) 명필로 이름을 떨친 백하(白下) 윤순(尹淳)과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시켜 조선을 비롯한 중국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서가의 필적을 통하여 유행서풍의 형성과 그 변모과정을 살필 수 있도록 마련하였습니다.

서간(書簡)

권상하 서간 사진
《송시열 서간 宋時烈書簡》,
1678년
서간은 개인 간의 의사를 전달하는 글로 서찰(書札), 간찰(簡札), 서독(書牘), 간독(簡牘), 척독(尺牘), 편지(片紙), 소식(消息)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조상은 선현의 자취를 중시했고 특히 일상의 고락(苦樂)이 곡진하게 담긴 서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옛 서간은 왕실을 비롯한 양반, 관료, 문인 또는 그들의 부인이 쓴 것이 대부분이며, 이밖에 서민의 것도 있습니다. 내용은 안부가 가장 많고 감사, 부탁, 상의, 보고 등 다양합니다. 대개 낱장으로 써서 봉투에 넣거나 접어 보내는데, 옛날 그대로 전하거나 가문, 인물, 계층 별로 엮은 첩으로도 전합니다. 서간은 실용적으로 작성된 것이나 서예작품과 달리 쓴 사람의 성향과 심리가 잘 반영되어 있어 꾸밈없는 글씨를 살필 수 있습니다.

어필(御筆)

읍궁진장첩/영조 글씨 사진
《서시옥당 書示玉堂》,
영조(英祖), 1770년,
보물 제1631-3호
어필은 제왕(帝王)의 글씨를 말하며 어서(御書), 신한(宸翰)이라고도 합니다. 또 황후와 왕후의 글씨도 어필이라고 하며, 세자(世子)의 글씨는 예필(睿筆)이라 합니다.
조선시대에 왕이 승하하면 생전에 남긴 어필을 간행하고 이를 존각(尊閣)에 간직하는 등 그 위업을 기렸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현종 초에 문종(文宗) 등 아홉 임금의 필적을 모아 《열성어필 (列聖御筆)》을 간행하고, 다음 왕이 즉위하면 선왕의 어필을 이어 간행했던 일입니다.
현존하는 어필은 대부분 조선시대 것입니다. 임금은 신하에게 서찰을 보내고 궁궐의 전각에 게시할 글씨를 쓰며, 역대 명신과 충신의 비문을 쓰는 등 다양한 필적을 남겼습니다. 이들 어필에서 군왕의 위엄과 덕행, 군신(君臣) 사이의 정리(情理)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근대 명인(近代 名人)

안중식 오언율시 사진
《매화소운 대련 梅花踈雲對聯》,
오세창(吳世昌)
조선말기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 활동한 근대 명인(名人)의 필적을 전시하였습니다. 먼저 추사의 말년 제자인 허련(許鍊)을 비롯하여 정학교(丁學敎), 김성근(金聲根), 김가진(金嘉鎭), 안중식(安中植) 등 구한말에 활동한 인물과 오세창(吳世昌), 김돈희(金敦熙), 이한복(李漢福) 등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서예가의 글씨를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조소앙(趙素昻), 광복 이후에 활동한 손재형(孫在馨)과 현중화(玄中和)등의 작품도 다양하게 포괄하였습니다. 특히 돋보이는 작품은 김용진(金容鎭) 등 6인의 합작 병풍으로 당대 서예가 및 서화가의 필적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사군자(四君子)

김응원 석란도 사진
《석란도 石蘭圖》,
김응원(金應元)
사군자(四君子)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이르는 말입니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이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국화는 늦은 가을 첫 추위를 이겨내고,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는 각 식물 특유의 속성을 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입니다.
산수화(山水畵)나 화조화(花鳥畵)의 일부분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사군자는 원(元)과 명(明)을 거치면서 문인화의 대표적인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된 사군자는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림과 글씨가 동일하다고 여기는 전통적 사고 속에서 사군자는 서예와 밀접한 분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화제(畵題)와 그것을 쓴 서체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 근대기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군자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문방사우(文房四友)

문방사우 붓, 벼루, 먹, 화선지 이미지 입니다.
전시실 코너 이미지
문방사우란 선비들이 글방에서 친구처럼 늘 가까이 하는 네 가지의 문방구를 말합니다. 지(紙), 필(筆), 묵(墨), 연(硯) 즉 종이, 붓, 먹, 벼루입니다. 또 글방의 네 가지 보배라는 뜻에서 ‘문방사보(文房四寶)’라고도 하는데, 이는 송나라 소이간(蘇易簡)의 『문방사보(文房四譜)』란 책이름에서 나왔습니다.
문방사우를 비롯하여 붓을 걸쳐두는 필가(筆架), 먹 가는 물을 담는 연적(硯滴)을 전시하였고, 글씨나 서화 혹은 중요 문서에 찍었던 인장과 인재를 종류별로 전시하는 코너를 마련하여 볼거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사랑방(舍廊房)

사랑방 이미지 입니다.
전시실 코너 이미지
조선시대 사랑방은 남성 즉 선비가 사용하던 거처이자 손님 접대를 위한 응접실로 주택 외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습니다. 선비가 주로 생활하던 사랑방을 재현한 이 공간에는 자연미를 살린 소박한 가구와 집기, 실용적인 문방구를 전시하였습니다. 경사(經史)를 읽고 시문을 읊으며 서화를 즐기면서 친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생각에 잠겼던 조상들의 고상한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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